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환절기가 되면 조문(弔問)갈 일이 늘어 납니다.
장례식장에서 더욱 겸허 해 지는 것은 생(生)을 내가 선택하지 못 했듯, 사(死) 역시 나의 의사와 상관 없이 주어진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내게 주어진 운명이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은 'B에서 D까지인데(From Birtth to Death), 그 사이 수 많은 C (Choice, 선택)들에 의해 결정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B(생)'와 'D(사)'는 그저 주어진 것이라 볼 수 있지만 그 사이 나의 'C(선택)'에 의해 내 운명이 결정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대부분 나의 평소 가진 '태도(Attitude)'가 결정할 일일 것 입니다.
어쩌면 인생은, 인생의 운명은 나의 '태도'에 의해 결정 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는 사망 길과 생명길이 있는데 저 마다 자기 하기 따라서 결정 되는 것이다"
시쳇말로 필자의 '최애(最愛)' 영화는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è bella 1997년)'입니다.
참혹한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아들 조슈아의 아름다운 영혼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버지 귀도는 이 '캠프'는 단지 게임을 하는 곳이며,
조슈아가 엄마가 보고 싶다거나, 배고프다고 하는 등 떼를 쓰거나 울지 않고 조용히 지내 술래(나치)들에게 발각 되지 않으면 끝에 탱크를 선물로 받는다고 말합니다.
귀도를 포함,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고통 속에 죽어 갔지만, 천진난만한 조슈아는 끝내 아버지의 이야기 대로 '즐겁고 흥미로운 게임'을 잘 해 내고 탱크를 받게 됩니다.
귀도는 그 아들 죠슈아가 처한 '세상'을 바꾸어 줄 수는 없었지만 '인생은 아름답다'는 '태도'를 갖게 해 주었습니다.
혹, 어느 분이 따져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것은 환영이고 허상이었지 않냐? 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한 구절이 이에 답 합니다.
'사랑이 없는 세계에서 산다면 우리의 마음은 램프 없는 환등기와 같을 것이다.
작은 램프를 끼워야 갖가지 영상이 스크린에 나타난다.
한낱 일시적인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해도 우리가 그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가슴 설렌다면 그것이 행복이다.'
'사랑'의 힘으로 변화시킨 '태도'는 그것이 환영같더라도, 허상 같더라도 실체적인 행복을 열매 맺게 해 주는 위대함이 됩니다.
신약시대 유대인들의 '예수'에 대한 실족은 모름지기 '주어진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었을 겁니다.
로마가 지배하는 식민지 삶을 '불과 칼'로 일시에 뒤바꿔 놓을 '메시야'가 아니라,
로마를 향해서는 돌 하나 던지지 않고 '천국이 마음에 있다'고 '태도'나 바꾸라는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가 말하는 천국은 그 들에게는 '환영'이나 '허상'과 같아 보였을 것입니다.
'메시야'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결코 자기에게 보내신 바 된 예수를 알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시대'는 하나님께서 구원자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들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시대이며,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신랑’으로 삼고, 천 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하는 역사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때, 이 시대도 역시나 '주어진 세상'이 단번에 바뀌어 지는 그런 일은 일어 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오직 하늘의 '말씀과 사랑'으로 '태도'를 바꾸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 나면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굼벵이 가듯 느리게 세상이 바뀌어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성경 본문의 '예복'에 대해서도 살펴 보고자 합니다.
처음에 저는 사거리 지나 다니는 '아무나' 초대 하고서 왜 '예복'으로 인해 대노하면서 쫓아 내셨을까? 의문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이 역시 시대상의 문제인데, 당시 궁궐 잔치에는 따로 예복까지 준비를 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임금의 입장에서 살진 소와 각종 음식을 다 공들여 준비하고 혹 갖추지 못 하고 올 사람을 대비하여 정성스럽게 예복까지 준비를 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복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그저 예복으로 '갈아 입는' 최소한의 수고도 않은 파렴치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임금이 화를 낼 충분한 이유가 될 듯 합니다.
이와같이 '예복'을 갖추는 것은 정말 최소한의 성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며 지켜야 할 최소한 예의이자, 기본인 것입니다.
이 때를 기다리는 자,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예복'은 '태도의 변화'가 될 것입니다.
성삼위, 주에 대한 태도, 이 땅에 임하실 하늘나라에 대한 태도, 인생과 세상을 향 해 마땅히 바꾸어야 할 태도
떄가 되면 누구나 쉽게 갖출 수 있는, 그러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하늘 앞에 '최소한'입니다.
그래도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청함은 받았으되, 택함까지 받지는 못 하는 것이 지당한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