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장이 들려주는 세푼칼럼! '세푼'짜리 부족한 글 솜씨로나마..... '세'상의 언어로 '푼' 주일말씀을 써 올립니다.
공부(工夫)의 진정한 의미
‘공부’는 보기만 해도 부담이 느껴질 수 있는 그런 단어 중 하나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공부(工夫)’가 되었는지 공(工)자와 부(夫)자를 붙여 보든, 나눠 보든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공부에서 ‘공(工)’은 위의 가로 획(-)은 ‘하늘’, 아래의 가로 획(-)은 ‘땅’을 뜻해 하늘과 땅을 연결(ㅣ)한다는 뜻을 가진 단어라고 합니다. 또한 ‘부(夫)’는 바로 이러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것이 사람(人)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공부(工夫)는 ‘하늘과 땅을 사람이 연결하는 것’이 되니 이는 온 천하 만물을 구성하는 삼재(三才 천.지.인)의 상호 작용과 목적을 규정하는 위대한 개념이 됩니다.
하늘과 사람이 공유해야 할 가치(Value)
태양(太陽)은 지구 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별도의 활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스스로 존재(Be)만 하고 있을 뿐인데 지구는 그 ‘존재함’ 자체로 그 안의 모든 생명이 그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너무나 귀한 그런 존재인 셈입니다. 성삼위 하나님을 자주 ‘태양’으로 비유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성삼위께서 태양보다 위대하심은 태양을 창조하셨다는 이유 외에도 의식적으로 사람들(땅)을 사랑을 해 주시는 행동(Do Value)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저 존재만 해 주셔도 찬양받으시기 합당할 그런 존재가 의식적인 노력(Do)까지 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사랑 갖기(Have Value)를 진정으로 원하신다니 이는 더욱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우리 존재의 ‘가치’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존재와 행위 그리고 소유(Be, Do, Have)의 가치에 대해 ‘상호 보완적인 입장에서 함께 노력하며 만들고 공유하는 관계’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의 관계, 사랑의 관계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정명석 목사께서는 바로 이러한 공부의 삶(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인생) 즉, 하늘과 사랑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세 가지 행동방안을 코치해 주셨습니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하늘이 원하는 대로, 그 뜻대로 살기’
그러기 위해서 ‘하늘의 보낸 자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행함’
구체적으로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무엇이 되었든 항상 성삼위를 의식하고 그와 대화하며 함께 행함’으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나만이 가는 길
정명석 목사께서는 제대로 공부(工夫)를 마친 분 중 한 분이십니다. 말씀과 실천이 함께 가는 생활의 표상이십니다. 그의 ‘실천의 경험’이 ‘말씀’이 되고, ‘말씀’이 다음 ‘실천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와 같이 ‘말씀’과 ‘실천’이 두 증인 되어 부단히 '나만의 길'을 가고 계신 그런 분이십니다.
<나만이 가는 길>
온종일
뛰어오다가
멈추니
온몸 뻐근하다
앉을 겨를 없이
다음 코스
발길에 닿는다
한숨 소리
절로 난다
어차피
가야 할 길
가야 한다마는
생명길을 간다 해도
신음 소리
절로 난다
다행이다
살아서
뛰고 사니
죽은 것보다는
낫다
이 코스 끝나면
다음 코스
또 기다린다마는
사양치 않고
간다
성자 주님
나 기다리시다가
나 늦게 온다고
홀로 떠날까
마음 졸인다
‘마음 졸이며’ 그 길을 가시지만 우리가 다 아는 대로 늘 감사와 감격 속에서 '나는 행복하다’ 고백합니다.
'감사와 행복'은 특정 조건이 갖추어진 ‘상태(Status)’가 아니고 어떻게 스스로 찾아 낼 수 있는가에 관한 '기술(Art)’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공부가 된 사람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자기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볼 수 있는 것은 흉내 낼 수 있고 흉내 낼 수 있다면 실제로 그리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보고 흉내 낼 수 있는 표상자가 있는 바로 이 역사. 우리가 이 역사를 가는 가장 큰 희망이요 즐거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