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과학자의 과학 칼럼입니다. 과학을 말씀으로 재조명해보는 신개념 과학 칼럼!!
우주와 형이상학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 만물과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을 남겼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계보를 거쳐 형성된 그리스 철학은 서양 철학의 토대가 되었고, 중세 과학 혁명 이전까지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세부 주제로 갈라진 과학과 다르다. 형이상학에서는 가장 포괄적이며, 가장 참되며, 가장 확실하며, 가장 고차원적인 무언가를 다룬다.
동그란 원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보통 사람들은 원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원은 그냥 동그란 원이다. 수학을 조금 배운 사람이라면 ‘정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자취’ 등 수학적인 원의 정의를 생각할 것이다. 예술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원이 가진 미적인 조화를 찾으려 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들은 ‘원은 가장 완벽한 도형이다’라는 특별한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원에 대한 특별한 생각은 그리스인들의 우주관에 영향을 미쳤다. 그다지 과학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였지만 그들은 사유를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탈레스는 지중해 근처를 항해하면서 수평선 근처의 배의 움직임을 통해 지구가 원반형이라는 주장을 했다. 피타고라스는 탈레스의 관측 사실을 바탕으로 지구는 신의 섭리를 나타내는 완벽한 구형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최초로 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지구의 크기를 계산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지구가 둥글다면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은 천장에 붙어 다닌다는 말인가? 물건은 아래에서 위로 떨어진다는 말인가?’와 같은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지구 중심으로 잡아당기는 힘의 존재를 밝혀냄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도 ‘평평한 지구 학회’같은 곳에서는 지구가 구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은 명백히 구형이다. 이제는 초등학생이라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체에 운동에 대해서는 하늘과 땅의 운동을 나눠서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은 미천한 곳이므로 땅의 운동은 오래 지속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땅의 운동은 시작과 끝이 있는 직선을 그려야 했다. 반면 하늘은 신성한 곳이므로 무한한 운동을 해야 하고, 끊어짐이 없어야 하므로 완벽한 원형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행성의 궤도는 완벽한 원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과 형이상학
중세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자연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실험과 관측을 통한 객관적 지식을 중시했던 베이컨은 사유에만 의존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베이컨의 관점에서 보면, 원이 가장 완벽한 도형이라는 명제는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이었다. 베이컨의 철학은 과학적 사고의 바탕이 되었고, 과학이 만들어낸 결과물도 형이상학과 다르게 우주를 설명했다. 실제 관측해 본 결과 지구는 완벽한 구형이 아니었다. 자전으로 인한 원심력의 영향으로 지구는 타원형이었다. 행성의 궤도는 완벽한 원형일까? 관측결과 행성은 타원 궤도로 운동했다. 태양계 주변의 행성도 원형으로 도는 것 같지만, 엄밀하게는 원형에서 약간 찌그러진 타원형이다.
그렇다고 형이상학을 무조건 틀렸다고만 볼 수 없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사유만으로 지구가 구형이고, 행성 궤도는 원형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형이상학의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 예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객관적인 관측과 실험, 셀 수 있는 것만을 중시하는 과학의 관점도 자연을 보는 완벽한 관점이라고 볼 수 없다. 현대 과학은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밝혀낼 수 있지만, 사물이 가진 의미와 가치는 절대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참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형이상학의 관점과 현대 과학의 관점을 조화롭게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