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Three Cents Column by Director Bong of RGO 24! 'Although I am lacking and my writing is only worth as much as 'three cents...' I share the Sunday messages and interpret them with 'the language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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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좁은 문'

"하나님께서 지으신 에덴 동산(지상 천국)도 파괴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존재, '사탄'을 배워 알아야 당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모르는 만큼 더 역사하기에 그러합니다."

참으로 공감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탄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로 주장하는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지 말라'고 했으면 사탄은 '하라'고 하며 하나님께서 '하라' 하심을 사탄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영'으로 말씀 하신 것을 그건 '육'에 관한 것이라 주장합니다.


'모든 것'의 시초에 대해 알려주는 '창세기'에서 부터 이러한 사탄의 계략은 여지 없이 잘 드러 나 있습니다.
아담,하와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과일을 따 '먹지 말라'하신 것을 '먹으라'고 하면서
따 먹는 날에 하나님께서 '영이 죽는다' 말씀하셨는데 사탄은 '육이 안 죽는다' 라고 꾀었습니다.


육을 쓰고 사는 입장에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삶 보다 눈에도 보이고 피부에도 와 닿는 육적인 삶으로 흘러 가는 것이 훨씬 쉬울 것입니다.
실제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육적인 삶에 치우쳐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영적인 삶을 살기란 좁은 문으로 들어 가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오직 영적인 것을 중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명의 앙드레지드(Andre Gide, 1869~1951)소설에서 제시한 '좁은 문'을 읽으면 또 생각이 깊어 집니다.
 
주인공 '제롬'과 '알리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서로를 정말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제롬은 알리사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약혼까지 요구하지만, 알리사는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거룩함을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는 말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의 하나 됨(?)'에 집중하자고 합니다.

오직 영적인 것에 집중하는 알리사는 이 땅에서의 세속적이고 관능적인 사랑을 버리고 거룩하고 정결한 좁은 문을 통한 구원에만 매달리고자 합니다.
심지어 자신에 대한 사랑이 오히려 제롬의 영적 삶에도 방해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거리를 두려고 노력합니다.
둘은 서로 사랑하지만 그것을 누르고 또 억누르면서 버텨 갑니다. 결국 두 사람은 아름다운 사랑을 이루지 못 하고 '쓸쓸한' 결말을 맞습니다.


앙드레 지드, 작자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홀로 되신 모친의 청교도적 교육방식에 대해 많이 고뇌하고 깊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작품 속 알리사의 고뇌는 작자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했던건지 모르겠습니다.

작품을 통해 지드는 '영적인 삶'과 '육적인 삶'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에 대한 판단도, 더 더욱 이 중에서 택일 할 것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알리사가 선택한 '좁은 문'에 대해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음은 분명히 느껴집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필자 역시 '답답함'을 느껴 불편했었습니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과 육적인 것을 중심하는 삶


양단 사이 많은 갈등의 문제를 두고 정명석 목사께서는 먼저는 '영'이요 성숙 후 '육'이어야 한다는 너무나 분명한 해답을 제시 해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경우 역시 그들이 먼저 성숙하여 신령한 단계로 올라갔어야 했는데 신령한 단계까지 못 간 상태에서 '육'이 타락해 버린 사건이 '원죄의 출발'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타락'이 아니었다면 '단계'를 밟아 올라 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진리, 때에 맞게)대로 행함으로써 영육이 조화롭게,
둘 다 완성 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며 그것이 창조주의 본래 의도, 뜻이었다는 말씀은 정말 '해답'을 제시해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들어 가야 할 '좁은 문'은 영,육 양단의 세계 그 어느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고, 영과 육을 다 알고 그 조화를 완전히 이룬 온전한 삶입니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하게 들릴 지 모르는 이 말씀은 사실 창조의 목적과 타락의 본질을 깨닫고서야 알 수 있는 깊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를 찾고자 했으나 찾지 못 했고, 알고자 했으나 알지 못 했기에 이 '문(門)'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여기에 이렇게 온전한 말씀이 있으니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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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4/2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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